행복해지는 법

대한민국 법무부 공식 블로그입니다. 국민께 힘이되는 법무정책과 친근하고 유용한 생활 속 법 상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겠습니다.

법블기 이야기/힘이되는 법

성폭행 막으려 남자 혀를 자른 여인, 죄가 될까?

법무부 블로그 2010. 4. 29. 17:00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 요즘, 어제 한 방송사에서는 여성의 성폭력과 현행법의 문제점에 대한 방송이 소개되었습니다. 방송에 따르면 성폭행을 당한 경우 가해자를 고소하고 싶은 마음은 거의 100%에 가깝지만 실제로 소송을 하는 비율은 7%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이마저도 소송 과정이 너무 힘이 들어서 또는 중도에 가해자와 합의하여 고소를 취하한다고 합니다.

 

소송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전개하고 있으나, 아직은 많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20년 전의 성폭력과 대처방법은 어땠을까요? 1990년, 대한민국 최초로 성폭력을 소재로 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한편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원미경, 김민종, 이경영 등이 출연한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는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성(性)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시해 주었던 영화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이 영화를 보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영화를 내내 보면서 미성년자를 못 보게 할 것이 아니라,

미성년자 특히 남학생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영화인 것 같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같은 여자로서 온 마음으로 동감하고 울었던 영화였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영화였거든요.

 

포스터에서는 강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법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정조’만을 보호한다면,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혀’만을 보호하라!!”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 네이버 블로그 ‘핑’   

 

 

여자, 자신을 겁탈하는 남자의 혀를 자르며 시작된 이야기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한 주부(이하 임정희)가 밤늦게 귀가하다가 청년 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임정희는 청년들에게 저항하다가 억지로 키스하는 한 청년의 혀를 물어, 그 청년은 혀가 잘리게 됩니다. (여기서 혀가 잘린 청년은 김민종이 연기하는데, 덕분에 재판 과정에서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던 걸로 기억됩니다.-0-;;) 임정희는 오히려 혀가 잘린 청년에게 고소를 당하고 재판을 받게 됩니다.(임정희가 이미 청년들과 합의를 하여 처벌할 수 없었는지 아니면, 고소기간 6개월을 넘겨버려 고소가 불가능했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전개상 후자일 가능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임정희에 대한 성폭행 사실이 밝혀지지만, 1심 법원은 여성의 감정이나 상황을 배려하지 않은 채 임정희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합니다.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이미 소문이 나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죠. 임정희는 항소를 결심하고, 변호사(손숙)와 함께 법정 투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험난한 재판 과정 속에서 술집에 출근했던 일 등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가 밝혀지고, 급기야는 자살까지 기도하게 됩니다.

 

 

 

결국, 끝까지 임정희 옆에서 그녀의 고통을 함께 나눈 변호사는 말합니다.

“재판장님! 과거 우리 조상은 정조를 지키려던 여자를 열녀로 숭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신의 정조를 지키려고 저항했던 한 여자를 법정에 세웠습니다. ···(중략)···· 그녀는 이제 우리 앞에서 세 번의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던 때에 이미 그녀는 여자로서 죽었고, 현장 검증에서는 모욕과 수치 속에서 한 인권을 가진 그녀가 죽었고, 법정에서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가 완전히 벗겨지면서 한 가정을 죽인 그녀가 죽었던 것입니다. ···(중략)···· 이제 남은 일은 우리가 그녀에게 가했던 오해와 비웃음과 모욕을 거두어들이는 일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법정에 선 임정희도 최후 진술에서 울먹입니다.

“재판장님! 저는 피해자인 저와 제 가족이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재판에서 여자로서 숨기고 싶었던 제 과거가 모두 밝혀졌습니다. 전 남편은 모든 돈을 가지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네! 술집에 나갔었습니다. 애가 열이 펄펄 나는데 수술 받지 않으면 병신이 된다고 했습니다. ···(중략)··· 유 변호사님! 사람의 진실을 그저 ”네!“,”아니오!“로만 대답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혼을 했고, 술 마셨고, 새벽 한시에 비틀거렸어요. 그러면 강간당해도 되는 것인가요? ···(중략)··· 재판장님! 만일 또 다시 이런 사건이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반항하는 것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안 된다고. 재판에 호소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90년대와 달라진 성폭력 방지법

 

결국, 임정희는 ‘무죄’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결론이지요. 만약 이 영화가 이 스토리 그대로 오늘날 극장에 개봉된다면 참 많은 논란이 일 것 같습니다.

 

1990년대와 비교한다면,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참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일단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많아 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숨기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 놓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좀 더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지요. 성폭력 가해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울 수도 있고, 아동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대폭 늘리기도 했습니다.

 

<강화된 성폭력관련법> -2010년 현재

-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전자발찌 부착을 3년 소급 적용

- 전자발찌 부착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최장 30년으로 대폭 연장

- 음주나 약물복용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감경 조항을 법원이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

- 성폭력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가 만 20세 되는 날부터 공소시효가 시작

  (DNA 등 증거가 있으면 시효를 10년 연장해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

- 아동 성폭행 살해와 같은 흉악범에 대해 유기징역의 상한을 15년에서 30년으로 하며,

가중처벌시 25년에서 최대 50년까지 높임.

- 성폭력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거주지역의 19세 미만 자녀가 있는 가정에 알리고 인터넷 공개

  (증거가 명백하면 수사 중이라도 흉악범의 얼굴과 성명, 나이 등을 공개)

 

위 영화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으로, 판례에서도 혀를 깨물어 혀를 잘라버린 행위(설절단상)는 상당성이 있다고 하여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대법원 89도358, 선고, 1989.8.8, 판결)

 

만약, 1990년대가 아닌 현재 임정희가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임정희의 행위는 당연히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법정에 서는 일은 없겠지만, 더 나아가 가해자의 성폭력도 처벌이 될 수 있을까요?

 

강화된 성폭력 관련 법률에 의해 처벌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고, 처벌의 정도도 강화되었으며, 재범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은 확실합니다.

다만, 성폭력 범죄가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로 있는 한, 가해자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현재와 같은 사회적 시선 속에서 용기를 내어 고소를 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 상황에서 임정희씨가 처벌을 원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가능해 질 것입니다.  

 

친고죄가 문제라면 친고죄를 폐지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텐데, 무턱대고 친고죄를 폐지하기도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는 하지만 피해자가 자신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피해자의 피해감정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수사를 하는 경우 피해자가 더 큰 인격적, 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소는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꼭 고쳐야 한다”는 어느 뉴스 앵커의 말이 떠오릅니다.

외양간을 먼저 고치지 못한 것은 정말 잘못한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어떻게 해야 모두가 만족할지 꼼꼼히 따져본 후에 보다 탄탄한 외양간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과 성폭력 범죄로 피해를 입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더욱 변화되어야 합니다. 법무부도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

 

*영화사진출처 : 다음 영화 검색, FOTOYA, 네이버블로그‘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