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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로 찌르고 9만원 빼앗은 10대, 판결은?

법무부 블로그 2010. 1. 25. 09:35

흉기로 찌르고 9만원 빼앗은 10대, 판결은?

 

 

 

 

종업원 흉기로 찌르고 9만원 빼앗은 10대, 판결은?

 

갓 법대에 들어온 새내기 때, 교수님께서 재판을 방청하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드라마와 영화 속의 열띤 공방을 떠올리며 잔뜩 기대를 품고 법원을 찾았는데, 실제 재판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판결이 나서 실망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재판의 트레이드 마크로 여겼던 ‘망치’마저 두들기지 않다니! 적잖이 실망을 한 적이 있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법원.

이번 사건은 특수강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신 모(19)군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으로, 피고인은 2007년 11월 대구시 수성구 모 편의점에 들어가 종업원을 흉기로 위협한 뒤 현금 9만원을 빼앗아 달아난 사건이었다.

 

 

배심원은 이름이 없다? 

 

ⓒ 오픈애즈. 배심원을 설득하는검사 

법정에 들어서니 배심원들이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름”이 아닌 “숫자”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판에 참여하면서 배심원들의 얼굴이 노출되기 때문에 혹시 모를 피고인의 보복을 방지하고자 이름대신 숫자로만 호명하는 것이다.

 

법정은 8명의 배심원이 더 참가하는 만큼 크고 넓었으며 사건설명을 도울 프로젝터가 설치되어있었다. 배심원들은 일반시민들로 구성되어 법과는 연관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텐데, 과연 그들이 법지식에 근거해 합리적인 판단을 해 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정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건 괜한 기우였다. 긴장을 풀고자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배심원들은 재판이 시작되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임했다. 자신들의 판단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 된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들었을 것이다. 사건에 집중한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한 검사와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설명할 때, 어려운 법률용어를 무슨 뜻인지 일일이 쉽게 풀어 설명해 주었고, 딱딱한 말투가 아닌 부드러운 말투로 거리감을 느낄 수 없어 친절한 느낌마저 들었다.

 

 

배심원 주의사항?

 

배심원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판결선고가 내려지기 전 까지 피고인을 범죄자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개성있는 헤어스타일에 과거 3~4차례의 특수절도 경력까지 있는 비행청소년이 피고인으로 들어오면 어떨까? 솔직히 나로선 편견을 버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을 겉 만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변호인이 피고인이 범죄자가 되기 전에 집단폭행의 피해자였다는 점, 사건 당시는 정신과 치료 중이었다는 점, 가출로 인해 숙식이 해결되지 못했던 점, 현재는 성실히 생활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검사측에서 내놓은 범죄당시의 CCTV를 함께 보았을 때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얼굴만 쓸어내릴 뿐이었다.

 

검사측에서는 범행이 계획적이고 전과도 있지만 미성년자임을 감안해 최소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제안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피고인이 모든 죄를 인정하였고 피해자들과 합의도 보았으며, 비록 학교로 다시 돌아가진 못했지만 미용 일을 배우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피고인을 최대한 선처해 줄 것을 호소했다.

 

ⓒ 오픈애즈

이 날의 재판은 죄의 유무보다는 어떤 형을 내릴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국민참여재판은 준참심제도로 배심원들이 양형에 대해서도 토의를 하지만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법관들이 배심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는 만큼 배심원들이 어떤 판단을 할 지 관심을 모았다.  

평의과정이 끝나고 판결 선고의 시간이 다가왔다. 판사가 범행수법이 위험하다는 둥 검사측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검사측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처분, 12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배심원들의 판단을 반영해 선처해 준 것이다.                                                

 

재판 후, 재판장이 배심원으로서 참여한 소감을 물었다. 최고령이었던 60대의 배심원은 배심원으로 선정됨을 알릴 때 법원등기가 날아와 내가 무엇인가 잘못을 했는지 놀랐다며 배심원용 봉투를 따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모두들 공감한 듯 긴장감이 돌던 법정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 다른 배심원은 국민참여재판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줄 몰라서 힘들었다며 법관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일 어렸던 대학생 배심원은 처음 참여해보는 재판이었는데 재미있었고 배심원으로 뽑힌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배심원들은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과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에 만족하는 듯했고, 국민참여재판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타국의 모범이 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은 아시아권 최초로 도입되었으며 최근 일본에서 견학 후 호평을 내릴 만큼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피고인들은 하고픈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배심원들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게다가 배심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는 것도 공정한 판결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잘 정비하고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여 다른 나라의 국민참여재판이 한국의 사례를 보고 배운 것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