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금융거래를 할 때 모두 본인의 이름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보이죠. 하지만 과거에는 금융거래를 내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금융실명제는 1993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금융거래를 할 때 가명 사용이 가능했는데요. 이로 인해 각종 부정부패의 근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차명계좌를 통한 뇌물 수수, 탈세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죠. 이러한 폐해를 막고 우리나라의 건전한 경제문화를 만들기 위해 김영상 정부에서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금융실명제, 도입 첫 반응은?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도입된 금융실명제는 다수의 부정부패 사건에 분노한 다수의 국민들은 금융실명제의 시행을 환영하기도 하였지만 모두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바로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해야한다’라는 취지의 금융실명제가 가명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의 비밀보장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금융실명제 도입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실명거래가 당연한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기는 하지만요.
은행에서 신분증 없이 진행되었던 모든 업무가 이제는 ‘본인확인’을 하지 않으면 진행이 되지 않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본인 확인 작업을 거치다 보니, 금융실명제 이전에는 빨리 끝났던 은행 업무가 몇 배 이상으로 길어지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실명제를 하다보니 그동안 별명이나 닉네임으로 통장거래를 했던 사람들이 정해진 기간 내에 은행을 찾아 모든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물론, 지하경제로 스며드는 검은돈이나 재벌들의 은닉재산이 수면위로 드러나니 투명한 금융거래가 가능해지니 장기적으로는 국민에게도 나라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았겠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당장 코앞에 닥친 소소한 불편함이 먼저 피부에 와닿았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금융실명제’는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금융실명제처럼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법률로써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긴급명령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였으며, 그 긴급명령권의 요건(긴급성)도 충족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헌법재판소는 금융실명제가 ‘국민의 비밀보장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헌재는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기각하였는데요. 헌법재판소에서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대통령의 긴급명령이 현저히 비합리적이고 자의적인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는 통치행위로서 사법부의 심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말해, ‘헌재가 사법기관으로서 관여할 바가 아님’ 이라는 결론인 것이죠.
통치행위는 쉽게 말해서 대통령이 가지는 행정권한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통치행위는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삼권분립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들 알고 계신가요? 국가권력을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으로 나누고 그 권력을 각각 다른 기관에 분배해서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하도록 하는 원칙인데요, 통치행위는 바로 행정권에 속하게 됩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대통령의 긴급명령은 명령을 제정하는 것이므로 입법권의 성격을 가지지만 엄연히 행정권의 영역입니다. 그렇기에 행정부가 실행한 것에 사법부가 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우리나라 행정법 체계에서는 행정작용을 할 때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는 법률유보의 원칙과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행정작용보다 우선한다는 법률 우위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긴급명령과 같은 통치행위는 이러한 원칙들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사안에 대해 행정부의 자치를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사법부는 통치행위에 대한 심사를 자제해야합니다.
금융실명제 시행 30년, 지금은?
2023년 올해로 만30년이 된 금융실명제는 거듭 수정•보완되어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개인정보보호와 금융 안정성이 더 강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금융 기관들이 이전에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던 정보를 모두 공개하게 됨으로써, 거래의 투명성도 높아졌습니다. 또한, 공개된 정보를 기반으로 금융감독원이 이를 모니터링하고, 금융기관들의 거래실적을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금융거래인들의 실명정보는 엄청난 정보재산입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공개된 정보를 악용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며,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금융회사들과 정부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까지도 정보시스템을 보다 더 강화하고, 금융감독원의 철저한 감시, 금융실명제의 지속적인 개선 및 확대 등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대한민국의 금융실명제가 더욱 효과적으로 시행되고,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며,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던 ‘별명’으로 금융거래 하던 시절! 만약,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적응하는 그 기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금융경제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요? 상상이 되시나요?
글 = 제15기 법무부 국민기자단 손정민(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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