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5개월째인 신입사원 A씨. 그는 직장에서 지속적인 폭언과 갑질을 당해왔습니다.
A씨의 상사는 그에게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냐”며 머리를 툭툭 치기도 하며 그를 무시했고,
때로는 업무 내용과는 관련 없는 개인 심부름까지도 A씨를 시켜 보내곤 했습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폭언과 갑질에 시달려야 했던 A씨.
그에게 직장은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최근 직장 내 갑질, 학교 폭력, 디지털 성범죄, 불법촬영 등 사람의 존엄성을 해치고 인격을 짓밟는 사건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경찰청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에 관한 형사사건은 전년에 비하여 49.5%나 증가했습니다.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사례는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제는 메타버스와 같은 3차원 가상현실 세계에서의 아바타,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얼굴을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합성한 편집물) 등에서도 인격에 대한 침해가 폭넓게 문제 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법적 분쟁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렇다면 인격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은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발생하면 수천만 원이 상한인 위자료 청구만이 가능할 뿐이었습니다. 민법에 인격권의 보호에 관한 명문 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생명, 신체, 건강,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개인정보 등과 같은 인격적 이익에 대하여 가지는 권리를 인격권이라고 하는데, 인격권은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이래 구체적으로 명문 규정으로서 정의된 것이 아니라 대법원 판례와 헌법재판소 결정례에서 그 존재가 인정될 뿐이었고 그 적용 범위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인격 침해 문제 속에서 개인의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 마련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재산 침해 외에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도 법적으로 위법한 행위이며, 인격적 이익도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보편화된 것입니다.
이에 법무부가 지난 4월, 인격권과 인격권 침해 배제·예방 청구권을 명문화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시민들의 인격권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고 인격적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법의식을 법제도에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법 제정 64년 만에 제한적으로 인정돼온 인격권이 명문화되면서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오늘은 민법상 인격권의 명문화에 대한 구체적 내용과 함께 인격권이 도입됨으로써 앞으로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인격권이란?
민법에서의 권리란 권리관계의 구성요소로서 ‘일정한 이익을 향수하도록 법이 인정한 힘’을 말하며, 내용에 따라 재산권, 인격권, 가족권, 사원권으로 분류됩니다. 그중 인격권은 사람이 자신의 생명, 신체, 건강,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개인정보 등과 같은 인격적 이익에 대하여 가지는 권리입니다.
그간 재산권과 가족제도를 중심으로 규율하던 민법에서는 따로 인격권의 정의를 명시하고 있지 않았기에 인격권의 침해가 발생하면 형사 처분을 받는 방식으로 관련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이렇듯 인격권 침해에 있어서 형법상 죄에 해당하지 않거나 재산상의 손해가 없으면 피해를 본 개인이 구제받을 방법이 몹시 제한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민법」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 (1) - 인격권과 인격권 침해배제·예방청구권
인격권이 민법에 정식으로 명문화되면서 1100개가 넘는 민법 조항 가운데 가장 앞쪽에 인격권 규정이 추가됩니다.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라는 내용의 민법 제3조 바로 다음입니다.
아래는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민법
제3조의2(인격권) ① 사람은 생명, 신체, 건강,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개인정보, 그 밖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② 사람은 그 인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 침해를 배제하고 침해된 이익을 회복하는 데 적당한 조치를 할 것을 청구할 수 있고, 침해할 염려가 있는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하여 그 예방이나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할 수 있다.
「민법」 제3조의2 제1항을 신설하여 인격권을 정의함으로써 어떠한 인격적 이익이 인격권으로 보호될 수 있는지를 예시하여 규정하는 법안을 마련하였습니다. 인격권을 보호하는 법적 근거와 기준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인격적 이익의 침해에 대한 실질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직장 내 갑질, 학교 폭력, 디지털 성범죄, 불법촬영, SNS를 이용한 가짜뉴스 유포, 개인 신상정보 유출, 딥 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음란 영상물 제작 등 개인의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 기존의 위자료 청구 외에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집니다.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거나 재산적인 손해가 없더라도 개인의 인격 또한 사유 재산처럼 보호를 받으므로 인격권 침해를 받은 피해자가 기존의 위자료 청구 외에도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으로 가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위 사례에서 직장 내 갑질을 당하던 A씨 역시 당사자인 직장 상사의 징계 및 근무장소 변경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여 인격권 침해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됩니다.
제3조의2 제2항은 인격권 침해배제·예방청구권에 관한 조항입니다.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사후적 손해배상청구권만으로는 권리 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인격권 침해를 중지시키거나 그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청구권을 보장함으로써 사전에 인격권 침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한 것입니다.
원치 않는 방식으로 기사나 영상물이 편집됐을 때 또는 보도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사적으로만 녹음했던 내용이 보도되거나 그러한 움직임이 있을 때,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인격권 침해배제·예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후적 조치만으로는 회복 및 권리 구제의 실효성 확보가 어려운 디지털 성범죄 등의 경우 선제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인격권이 침해되는 등의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민법」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 (2) - 법인의 인격권
민법
제34조의2(법인의 인격권) 제3조의2는 그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법인에 준용한다.
인격권은 법인에도 똑같이 부여됩니다. 민법 제34조의2는 자연인이 아닌 법인도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준용 규정입니다. 인격권이 자연인은 물론이고 법인에도 똑같이 부여된다는 점은 이번 민법 개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법인의 권리는 초상권, 명칭권, 명예훼손 등 제한적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 법인의 인격권이 포괄적으로 인정되면서 법인도 인격권 침해에 대한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과장광고나 허위기사로 브랜드 가치가 높은 특정 기업의 명예가 훼손되는 등 이로 인해 해당 법인의 인격권이 침해됐다면 이에 대하여 적절히 대항할 수 있습니다.
■ 인격권의 민법 도입, 그 미래는?
판례로 제한적으로만 인정되던 인격권이 민법에 도입됨으로써 앞으로는 직장 내 갑질, 학교 폭력, 디지털 성범죄, 불법촬영 등 보다 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격 침해에 대한 실효적 구제와 예방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인격권 규정 신설은 민법에서 인격권을 보호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로서 새롭게 반영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이러한 인격권의 민법 도입을 계기로 나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인격적 가치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널리 확산되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글 = 제14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오영서(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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