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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과 인권사이! 피의자 신상공개제도

법무부 블로그 2020. 11. 12. 16:11

201911,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요구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범죄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 전체를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지요. 해당 사건에 대한 신상공개 청원 인원은 역대 최대 규모였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전원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4명의 피의자가 공개되었습니다.

 

N번방 사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 신상공개제도가 적용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동시에,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에 대해 재고해 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함으로써 재범을 막고 시민들의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의자가 아직 범죄 사실이 판결을 통해 완전히 확정된 자가 아니라 단지 혐의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제도가 법의 최종 목표인 인권 보호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비판 또한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피의자 신상공개제도가 정확히 어떤 것이며 어떤 경위로 세워진 제도인지를 살펴보고 그 장단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피의자 신상공개, 어떤 사람만 가능할까?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등에 따라 피의자의 얼굴, 성명,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그리고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강력범죄사건 피의자의 얼굴, 성명,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명시하고 있습니다.

 

 

[피의자 신상공개 기준] ⓒktv

 

피의자 신상공개,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1990년까지 강력사건 피의자의 신상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법제 내에서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신상이 공개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에 들어서면서 인권 단체들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인권 담론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피의자의 얼굴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게 정식으로 보호 조치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조는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200910명 이상의 여성을 연쇄살인한 '강호순 사건'을 기점으로 여론은 국가가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이에 국가는 인권단체의 반발과 일부 법조계의 반 의견에도 불구하고, 20104특별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신설했고, 해당 법의 요건을 충족하는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여론은 2010년대 있었던 굵직한 강력범죄에 의해 더욱 강화되어 왔습니다. 2016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서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는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합의된 여론을 보여줍니다.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국민의 여론] ⓒ 리얼미터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순기능과 역기능

특별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도 쓰여 있듯 신상공개제도의 주된 목표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통해 공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10년 이상 유지되어 온 만큼 이 목표를 충실해 수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신상을 공개한다는 강력한 조치를 통해 감시망을 사회 전체로 확대함으로써 흉악한 범죄자가 다시 범행을 일으킬 가능성을 낮추고 공공의 이익과 치안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변 사회의 치안을 직접적으로 훼손한 범죄자의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합니다. 또한 제도의 존재 자체가 강력범죄를 일정 부분 예방하는 효과를 지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는 상당히 위험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 등 핵심적인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불특정 다수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확률은 낮지만 혐의가 없는 사람이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제도는 해외에서도 찾기 힘든 사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언론의 자율성에 맡겨 놓은 영역이지요. 이는 반대로 말하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라는 거대권력이 쥐어서는 안 되는 권한이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권담론이 여러 차례의 강력범죄 이후 상당히 약화되었으며, 헌법재판소에도 관련 판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가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의 사각지대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게다가 현재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기구는 일선 경찰서에 각각 설치된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입니다. 그러나 위원회가 지방경찰청 별로 상이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해당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임시로 소집되기 때문에 결정에 일관성이 없다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임시적인 성격이 강한 운영 방식 때문에 4인의 외부 전문가와 3인의 경찰관 역시 사건별로 모두 다르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수락산 살인사건과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신상이 공개된 반면 국민의 공분을 산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던 사례를 보면 심사기준의 일관성에 문제를 제기할 여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한 곳이라고 평가받는 데는 일상생활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력의 역할도 크겠지만, 피의자 신상공개제도 등과 같이 범죄자의 기본권을 강력히 제한하여 공익을 달성하는 데 국민적, 국가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우리나라는 범죄자에게 점점 엄격한 국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국격과 국민을 위해서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내부적으로 피의자 혹은 가해자 중심의 수사, 판결이 이루어진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이는 사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극적인 범죄 사실과 보도에 휩쓸려 인권과 기본권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범죄 피의자는 피의자이기 전에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법의 경계 밖으로 몰려나기 가장 쉬운 이들을 최대한 보호해 줘야만 결국 우리 국민 전체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 12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박효준(대학부)

이미지 = 클립아트코리아, ktv, 리얼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