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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속의 법, [베니스의상인] 속 법정을 들여다보자!

법무부 블로그 2018. 3. 19. 09:00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은 흔히 희극과 비극 그리고 사극으로 나누어지는데요. 얼마 전 소개해드린 햄릿에 이어, 이번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가 32세 무렵에 쓴 작품으로, 1605년에 초연된 후 오늘날까지 수없이 공연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사랑과 우정, 법률과 유대인 문제를 둘러싼 이야기로 그 속에 기막힌 반전이 숨어있는 작품입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최고의 명장면은 단연 인육 계약을 둘러싼 법정 싸움인데요. '1파운드의 살'을 담보로 차용 증서를 쓴 '인육 계약'. 지금부터 재판이 열리게 된 사정과 그 속에 숨어있는 문제점을 알아보겠습니다.

 

    


셰익스피어 (출처/클립아트 코리아)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바사니오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바사니오는 벨몬트의 상속녀 포샤에게 구혼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안토니오에게 도움을 청한다. 안토니오는 그를 위해 자신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거금을 빌린다. 바사니오는 포샤와의 결혼에 성공하지만 안토니오의 배는 난파하여 파산에 이르고, 꼼짝없이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내야 할 처지에 놓인다.

 

-베니스의 상인 중에서


 

 

인육계약은 한마디로 말해 목숨을 저당 잡히는 계약입니다. 정해진 기간 내에 빚을 갚지 못하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채무자는 망설이지만, 어차피 한 달 후면 엄청난 상품을 실은 자신의 배가 들어올 것이므로 충분히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채무자는 계약서에 서명을 합니다. 하지만 채무자의 배는 풍랑을 만나 침몰 해버리고 정해진 변제기한은 지나버렸습니다. 채권자는 차용증에 기해 소송을 제기합니다.

 

법정에 선 안토니오(채무자)와 샤일록(채권자)! 베니스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소위 인육 계약을 둘러싼 재판에 쏠립니다. 남편의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재판관으로 변장한 포샤는 "계약이 살 1파운드만 허용하고 있으므로 1파운드를 더해도 덜해도 안 되고, 아울러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법에 따라 전 재산을 몰수한다."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하지만 피를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낼 수는 없는 법! 포셔의 재판에 대해 베니스의 시민들은 명판결이라고 박수를 보냅니다.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베니스의 상인 중에서 (The Merchant Of Venice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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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은 원금 배상까지 거절당한 것은 물론이고, 무고한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노렸다는 죄목으로 전 재산을 몰수당합니다. 또한 목숨을 부지하려면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 받습니다. 결국 재판에서 승소한 사람은 안토니오(채무자)입니다. 이 재판에는 아무런 문제점이 없을까요? 그리고 포셔의 판결은 과연 정당할까요?

 

 

샤일록과 같은 유대인 법학자들은 소위 인육 계약을 둘러싼 재판 자체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말하자면 그 계약은 우리 민법의 반사회질서(민법 제103)에 해당해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합니다. 만약 포샤의 주장대로 그 계약이 유효라고 하면 살을 떼어낼 때 피를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독일의 법학자 예링) , 우리 민법 제 100조에서 말하는 종물에 대한 권리라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약정 역시 계약서에 규율된 바 없습니다. 그리고 1파운드의 살을 떼어낸다는 계약이라면 그 이하를 떼어내는 것도 유효하고, 따라서 샤일록이 원금 배상까지 거절당한 것은 문제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 *예술, 법을 만나다, 박홍규 지음, 229p)

 

인육 계약은 왜 무효일까?

    


 

당사자 간에 어떤 약속을 하든 원칙적으로 국가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약속이 사회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한 것이라면 이를 무효화하겠다는 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에 의하면 당사자 사이의 약속은 일정한 한계를 갖습니다. 이런 제왕적 조항은 대부분 나라의 민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조항에 비춰볼 때,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계약은 무효입니다.


반면에 사람의 목숨을 노린 샤일록의 사권의 남용에 대한 법원의 배상요구는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나아가 당시 베니스법은 약속 이행의 절대성에 입각해 인육계약을 허용했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포샤의 재판은 정의에 대한 재판관의 감각의 표현으로서 19세기 말엽에 유행한 자유법 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당시 해상법상 배가 침몰되었을 때 변상은 면제되었으므로 샤일록이 그 사건을 재판으로 다툴 수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술, 법을 만나다, 박홍규 지음, 230p)

 

인육 계약 재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은 포샤입니다. 포샤는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인육계약을 반사회질서의 성격으로 보아 무효로 판결해야 했습니다. 또한 민사 재판임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에게 재산 몰수와 기독교에의 개종을 명하는 판결을 내린 일은 재판관으로서의 권한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의 침해) 재산몰수의 근거가 된 법이 당시의 외국인법이라고 하나 그 법은 미국의 흑인 차별법, 나치의 법 이상으로 악법이었습니다. 또한 포샤는 소송당사자인 안토니오의 친구이자 돈을 빌린 바사니오의 약혼녀이기 때문에 이 재판을 맡아서는 안됩니다. (*예술, 법을 만나다, 박홍규 지음, 231p)

마지막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속의 인육 계약 재판은 민사사건으로 출발하여 형사사건으로 성격이 변하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상식 이하의 재판입니다. 근대, 현대 민법의 차원에서 위법성은 도리어 포샤의 판결에 있습니다. 포샤의 피에 관한 논술, 샤일록의 계약의 관한 궤변은 모두 무시되어야 하고 올바른 재판관이라면 돈을 갚으라는 채무 이행의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또한 재판 절차에서도 포샤가 판사를 가장해 판결을 내리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빛난다고 다 금은 아니다. 그런 말을 여러 번 들었겠지.” 셰익스피어의 고전 '베니스의 상인은 겉보기엔 르네상스 시대 아름다운 도시 베니스에서 전개되는 낭만 희극, 요즘 말로 로맨틱 코미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악인이 의인으로, 의인이 악인으로 변주될 수 있는 치밀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샤일록은 돈 밖에 모르는 악마일까요, 다수의 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불쌍한 희생자일까요? 현명한 여인의 표상인 포샤는 어쩌면 가장 그럴싸한 위선자가 아닐까요? 베니스에서 벌어진 인육 계약 재판 이야기는 지금, 어딘가 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법무부 블로그기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된 글이며, 법무부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


 

= 10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강사랑(일반부)

 

<참고 자료>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바라본 계약의 한계, The L, 조우성의 로세이, 2016. 1. 14.보도

파이낸셜 : 샤일록 재판 유감, 파이넨셜 뉴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칼럼, 2016. 10. 25. 보도

연극 노래하는 샤일록’, 원작 베니스의 상인과 함께 보는 리뷰, 컨슈머타임스, 2014. 4. 14. 보도

예술, 법을 만나다, 박홍규지음, 이다미디어,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