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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사모님이 가난한 여주인공에게 내민 각서 효과는?

법무부 블로그 2011. 1. 15. 19:00

 

“내 아들과 만나지 않겠다고 각서 써!”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약속을 합니다. 약속은 사람과의 신뢰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약속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약속을 했다는 증거 자료로서 ‘각서’를 남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각서’를 자주 만나는데요. 특히 부잣집 어머니가 자기 아들과 만나지 말 것을 협박하며 가난한 여주인공에게 각서를 쓰게 하는 장면은 너무나 자주 봐왔던 장면입니다. 바람피운 남편에게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는 장면도 생각나는군요.

 

 

 

하지만 각서를 쓴다고 해서 모든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민법은 개인이 자기의 법률관계를 자유로운 의사에 기하여 형성할 수 있다는 ‘계약자유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계약 등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 위 계약은 무효라고 말합니다. 즉 개인의 자유를 심하게 제한하는 계약, 즉 절대 이혼하지 않기로 하는 계약 내지 합의처럼 극단적인 각서는 무효가 됩니다. 또한 공정하지 못한 경우에도 각서의 효력은 사라집니다.

 

 

바람피우면 위자료 10억 각서 효과는?

한 입시학원장인 김바람(남)씨가 결혼정보업체의 주선으로 돌싱녀(여)씨를 만나 동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달여 만에 나바람씨가 바람을 피우다 돌싱녀씨에게 딱 걸렸고, 돌싱녀씨는 “복잡한 여자관계를 학원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하면서 ‘다시 부적절한 행동을 할 경우 위자료 10억 원을 주고 헤어진다’는 각서를 쓰고 공증까지 받았습니다.

 

 

 

 

 

 

 

 

 

결국 돌싱녀씨에게 질려버린 김바람씨가 마음을 바꾸어 결별을 선언했고, 돌싱녀씨는 김바람씨에게 10억원을 내놓으라며 법원에 약정금 청구소송을 했습니다. 이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김바람씨는 돌싱녀씨에게 10억원을 내 주어야 할까요?

 

결론은 ‘아닙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4부는 “공증 등 법적 절차를 거쳤더라도 각서의 공정성이 없어 무효”라며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여자관계를 폭로한다는 말이 교육업 종사자인 김바람씨에게 큰 위협이 된 것으로 보이며, 3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동거 때문에 10억 원을 부담한다는 것은 상당한 재력을 감안해도 지나치다”고 설명했습니다.

(동아일보 2010.12.13일자 참고)

 

 

이 기사에서처럼 공증까지 받은 각서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각서는 별로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각서의 모든 부분이 무효처리가 되기도 하지만 또 상황에 따라서는 일부는 인정이 안 되고 일부만 인정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0년 여름에는 펀드손실로 인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직원이 평가금액이 어느 정도의 선에서 떨어지면 차액을 보장한다는 각서를 미리 써 주었고, 실제로 평가금액이 떨어졌으니, 차액을 보상해 달라는 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등법원에서는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각서는 은행직원이 자의로 써줬다기보다는 고객의 항의와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작성해 준 것으로 보이고, 각서 작성 당시에는 펀드 위험성을 명확하게 알았던 점 등으로 미뤄 각서 작성 이후 투자 손실은 전적으로 고객 책임에 의한 것” 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차액인 7억 원을 모두 보상하는 것은 부당하고 대신 4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파이넨셜 뉴스 7월 29일자)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할 뻔 한 고객이 각서를 받아 두었기 때문에 그나마 돈 4000만원이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각서가 그리 무용지물은 아니라는 게 이해가 되시지요?^^

 

 

 

각서의 법적효과는 그때 그때 달라요~

앞서 말한 두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각서를 썼을 때의 상황을 고려했다는 것입니다. 각서는 각서 그 자체로 소용이 없으며 공증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들 잘 알고 계시는데, 그와 동시에, 공증을 받으면 무조건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고, 각서를 쓴 것이 강요에 의하거나 일방에게만 이득이 있거나 상황이 공평하지 않았다면 법적 효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

 

 

 

 

 

 

법적으로 효용이 있든 없든, 각서를 쓰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약속을 종이 위에 한 번 더 적음으로서 이 약속이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각서를 씀으로써 누구에게만 유리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또는 누구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바른 약속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잣집 사모님께 “내 아들과 교제하지 말라!”는 각서를 쓰도록 강요받았다면, 그냥 쿨! 하게 각서를 써 주시고 계속 사랑을 키우셔도 법적으로는 문제 될 것이 없을 것 같네요.^^;;

 

 

글 = 박관호 기자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