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이란 사법부에 소속되어 재판의 업무 등을 담당하고 해당 사건의 심리를 맡은 사람으로, 쉽게 말해 판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법관은 재판 진행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체 중 하나인데요. 나의 가족이나 지인인 법관에게 재판을 받아 유리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또는 피고인으로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법관이 피해자이거나 피해자의 지인인 경우도 존재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럴 일은 없습니다. 현행법은 공평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관의 제척, 기피, 회피 제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관이 편견을 가지고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해당 소송에 참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 가지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고 그 차이는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볼까요?
법관의 제척
제척이란, 사건의 당사자 또는 사건의 내용과 특수한 관계를 가진 법관 등을 그 직무의 집행에서 배제하는 것을 말합니다(네이버 지식백과). 우리 법은 법관과 피고인의 관계, 또는 사건과의 관계 등을 두루 살펴서 법관을 제척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해 두고 있는데요.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형사소송법
제17조(제척의 원인) 법관은 다음 경우에는 직무집행에서 제척된다.
1. 법관이 피해자인 때
2. 법관이 피고인 또는 피해자의 친족 또는 친족관계가 있었던 자인 때
3. 법관이 피고인 또는 피해자의 법정대리인, 후견감독인인 때
4. 법관이 사건에 관하여 증인, 감정인, 피해자의 대리인으로 된 때
5. 법관이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의 대리인, 변호인, 보조인으로 된 때
6. 법관이 사건에 관하여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행한 때
7. 법관이 사건에 관하여 전심재판 또는 그 기초되는 조사, 심리에 관여한 때
8. 법관이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의 변호인이거나 피고인ㆍ피해자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법무법인(유한), 법무조합, 법률사무소, 「외국법자문사법」 제2조제9호에 따른 합작법무법인에서 퇴직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때
9. 법관이 피고인인 법인ㆍ기관ㆍ단체에서 임원 또는 직원으로 퇴직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때
형사소송법 제17조에 기재된 사유에 해당하는 법관을 직무집행에서 자동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바로 제척입니다.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 법관은 특별한 절차 없이 당연히 배제됩니다. 제척 사유가 있다면 법관이 실제로 불공정하게 재판을 할 의사가 있었는지와 무관하게 공평한 재판의 원리가 침해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제척 사유를 크게 구분지어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법관이 피해자이거나 이해관계인이면 제척됩니다.
여기서 피해자는 직접적인 피해자를 의미하고, 간접적으로 피해당한 경우에는 제척되지 않습니다. 법관이 피고인 또는 피해자와 친족이거나 법정대리인, 증인, 감정인 등의 이해관계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해당 사건에서 제척됩니다. 또한, 법무법인 등에서 퇴직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법관이라면 해당 법무법인이 대리인으로 참여한 사건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근무했던 법무법인과의 밀접한 관계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어 공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법관이 이미 사건에 관여한 경우에는 해당 재판에서 제척됩니다.
이미 사건에 관여했다는 것은, 해당 사건의 전심재판 또는 그 기초되는 조사나 심리에 관여했음을 의미하는데요. 여기서 ‘전심’이란 상소제기에 의해 불복이 신청된 재판으로, 제3심에 대해서는 1심과 2심 모두 전심재판이 됩니다. 이 경우 법관에게 선입견이 형성되었을 우려가 있고, 상소한 이후에도 같은 법관에게 재판을 받게 되면 상소권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제척 사유가 됩니다.
법관의 기피
기피란, 법관, 법원 직원 따위가 한쪽 소송 관계인과 특수한 관계에 있거나 어떠한 사정으로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고 여겨질 때 다른 쪽 소송 당사자가 그 법관이나 직원의 직무 집행을 거부하는 일을 말합니다(네이버 국어사전).
앞서 살펴본 법관의 제척은 법률에 그 사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제척 사유에 해당되면 법관은 곧바로 제척되지만,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크더라도 법률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제척될 수 없습니다. 이려한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법관의 기피제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18조(기피의 원인과 신청권자) ①검사 또는 피고인은 다음 경우에 법관의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1. 법관이 전조 각 호의 사유에 해당되는 때
2.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제20조(기피신청기각과 처리) ①기피신청이 소송의 지연을 목적으로 함이 명백하거나 제19조의 규정에 위배된 때에는 신청을 받은 법원 또는 법관은 결정으로 이를 기각한다.
기피는 법관에게 제척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참여하거나, 공평하지 않은 재판을 할 염려가 있을 때에 당사자의 신청을 통해 법관을 배제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거나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사유가 아니더라도 기피의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경우’는 구체적 상황을 종합하여 판단하게 되는데요. 재판 중에 재판 결과를 예단한 말을 하거나 언론에 불필요한 정보를 전하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다만, 단순한 주관적인 염려만으로는 기피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즉, 법관의 성별이나 종교, 과거 재판 내력 등은 기피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소송을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기피를 신청한 경우에는 기피 신청이 기각될 수 있습니다.
법관의 회피
회피는 법관이 자발적으로 직무집행에서 탈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법관 스스로 제척 사유나 불공평한 재판을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자의에 의해 업무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재판의 공정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법관의 직무상 의무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회피의 의사가 있으면 무조건 배제되는 것이 아니고, 소속 법원에 신청을 해야하며 소속 법원의 결정이 있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4조(회피의 원인 등) ①법관이 제18조의 규정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다고 사료한 때에는 회피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공평한 재판을 위한 법관의 제척, 기피, 회피 제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제척은 법률에 규정된 사유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기피는 당사자의 신청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회피는 법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5조(법원사무관등에 대한 제척·기피·회피) ① 본장의 규정은 제17조제7호의 규정을 제한 외에는 법원서기관ㆍ법원사무관ㆍ법원주사 또는 법원주사보(이하 “법원사무관등”이라 한다)와 통역인에 준용한다.
현행법은 법관 외에 재판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법원 서기관이나 사무관, 통역인에 대해서도 이러한 제척 기피 회피 제도를 확대 적용하고 있습니다. 법관만큼 재판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법관의 제척, 기피, 회피 제도가 공평한 재판의 원리를 구현하는데 이바지하고, 재판 당사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
글 = 제13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김현주(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