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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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전장관님, 잔소리좀 그만 해주세요!

법무부 블로그 2011. 5. 17. 17:00

 

말단 공무원이 어느 날 극장에서 장관의 머리에 대고 재채기를 한다면?

생일을 맞은 열아홉 살 아들에게 아버지가 주는 생일 선물이 여자와의 첫 경험 이라면?

엄살이 심한 사제와 실력 없는 치과의사가 만난다면?

푼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하는 건달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 절대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무대 위에서 펼쳐집니다. 이 모두가 닐 사이먼 作 ‘굿 닥터’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인데요. 5월 12일 오후 2시, 서울소년원(고봉 중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소년원 학생들이 직접 연기하는 ‘굿 닥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굿 닥터’를 연기한 서울소년원 학생들

 

 

청소년들이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연극의 총 연출자는 바로 유인촌 전 장관이었는데요. 퇴임 후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겠다는 평소 소신을 실천하기 위해 서울소년원과 상의 끝에 연극반을 꾸린 것이었습니다. 장관이라는 명함을 내려놓고 순수 연극인으로 돌아온 그가 지난 3개월 동안 학생 18명과 함께 땀 흘린 결과물이 드디어 사람들 앞에 공개 되었는데요. 소년들은 분장을 통해 아저씨가 되기도 하고, 의사가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예쁜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기도 했습니다.

 

‘굿 닥터’는 러시아 희곡작가 안톤 체홉이 젊은 시절 신문에 연재한 짧은 이야기를 미국의 코미디 작가 ‘닐 사이먼’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서 만든 풍자극인데요.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하여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지금까지 많은 공연이 이어져오고 있는 작품입니다.

 

 

 

▲제1장 1막 ‘재채기’

 

 

 

▲ ‘재채기’ 한 장면. 공연장에서 장관부부(좌)를 만난 하급 공무원 부부(우).

 

공연의 문을 여는 에피소드인 ‘재채기’는 연극 공연장에서 장관을 만난 하급 공무원이 장관에게 심한 재채기를 하는데요. 이 하급 공무원이 너무나 소심한 나머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집니다. 장관은 괜찮다고 하지만, 하급 공무원은 장관이 속으로 자신을 잘라버릴 딴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의심하게 되지요. 이 하급 공무원은 결국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쓸데없이 소심한 사람을 풍자하는 듯 했지만, ‘권력’을 두려워해 결국 스스로 자멸에 이르는 하급 공무원을 통해 힘없는 소시민이 겪을 수 있는 권력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큰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착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제1막 2장 ‘가정교사’ 한 장면.

온갖 핑계로 월급을 차압하는 주인(좌)과 고스란히 월급을 뺏기는 가정교사(우)

 

두 번째 에피소드인 ‘가정교사’의 경우도 재미있지만 안타까운 이야기였는데요. 마음씨가 착한 가정교사와 월급을 주지 않으려는 주인의 신경전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었습니다. 온갖 핑계를 대가며 가정교사의 월급을 야금야금 깎아내리는 주인 앞에서 착한 가정교사는 목소리 한 번 높이지 못하고 계속 월급을 빼앗기는데요.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초라한 가정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할 일은 많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달콤 쌉사름한 유인촌 전 장관의 잔소리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에피소드 ‘치과의사’, ‘생일선물’, ‘물에 빠진 사나이’, ‘늦은 행복’

 

앞서 소개한 두 개의 에피소드 외에 겁 많은 사제와 돌팔이 치과의사의 이야기를 그린 ‘치과의사’, 공원에서 처음 만난 두 노인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늦은 행복’ 등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9편의 에피소드가 1시간동안 무대를 꽉 채웠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서 열연을 펼쳤던 한 학생을 만나 인터뷰를 해 보았는데요. 배우로 활약했다는 벅찬 감동 때문이었는지 잔뜩 고조된 목소리로 인터뷰에 임해 주었습니다.

 

INTERVIEW│최지훈(가명. ‘재채기’ 에피소드에서 공무원 役)

 

Q. 연극에 참여하게 된 과정은?

A. 고봉 중․고등학교에서 연극부 모집을 한다고 했어요. 처음엔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시간이 빨리 갈 거란 생각에 신청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요.^^

 

Q. 연극 연습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이나 재미있었던 적은?

A. 힘든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먼저 유인촌 전 장관님의 잔소리는 좀……(웃음). 연극이 처음이다 보니 많은 지적을 받았었어요. 그래도 연극을 올린 지금 생각해보니,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잔소리였던 것 같아요.

다음은 대사외우는 게 어려웠어요. 너무 안 외워져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랬더니 유인촌 전 장관님이 너무 대사를 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냥 계속 말을 해보라고 하셨죠. 그렇게 반복했더니 정말 외워졌어요.

재미있었던 적은 고봉 중․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이렇게 마음을 하나로 합쳐서 하는 일이 드문데요. 이번 연극이 그런 계기가 된 거 같아 너무 재미있었어요.

 

Q.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또 연극에 참여할 생각이 있는지?

A. 당연하죠! 힘을 합쳐 무언가를 완성한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관객들이 원한다면 저는 언제든지 달려갈 거예요.(함박웃음)

 

유인촌 전 장관은 공연이 끝난 후 이귀남 법무부장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는데요. 유 전 장관은 “교육에 관련된 입시에만 집중되어 있는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을 오래전부터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친구들에게 먼저 문화예술교육이 전해져야한다고 평소 생각했었기 때문에 소년원친구들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무대 아래에서 유 전 장관을 만나 연극 전후로 소년원 학생들의 태도나 인상이 달라진 것이 있느냐고 묻자, “처음에는 아무래도 외부인이다 보니깐 마음을 잘 열지 못했고 무거운 분위기였으나, 점점 학생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자신감이 붙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아이들의 변화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유 전 장관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준 소년원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날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지원군이 있었는데요. 바로 영화배우 이정재씨였습니다. 그는 소년원 친구들의 열의와 노력에 감탄했다고 소감을 전했는데요. 유명한 배우가 자신들의 공연을 직접 관람했다는 사실에 배우로 활약한 친구들이 모두 잔뜩 들뜬 것 같았습니다.

 

 

말썽꾸러기 소년원 아이들의 재발견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 집중하기는 다소 힘든 탁 트인 대강당…….

사실, 서울 소년원 대강당은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공연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문적인 음향시설이나 방음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아, 연극을 관람하기에 좋은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뒤에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요. 이런 큰 아쉬움도 있었지만, 우리 학생들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는 이유로 이 연극이 주는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한 우리 소년원 학생들이 누군가의 시선을 받고, 그 시선을 당당히 즐기며 ‘배우’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했을까요? 그 소년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연극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 소년원 학생들의 미래를 응원해야겠습니다.

 

취재 = 정승호 박지희 기자

사진 = 정승호 박지희기자, 법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