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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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수용자의 만만한 교도관 길들이기

법무부 블로그 2010. 9. 14. 11:00

 

주부9단 저리가라! 수용생활 9단!

그 수용자는 시쳇말로 내공이 세다고들 했습니다. 혹자는 그가 가진 국가배상에서의 승소전력과 정보공개청구제도를 악용한 개인처우의 질적 개선 능력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가급적 건드리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교도소 안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지요.

 

 

어느 밤, 그가 나를 불렀습니다. 당시 나는 그 사동의 근무자였습니다. 그는 한마디, 단 한마디만 던졌습니다.

 

“지금 당장 당직 계장 면담할 테니, 연락 넣으시오.”

 

이 밤중에 면담이라. 순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복잡다단한 파급 효과를 그려보았습니다. 그러나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만무했지요.

 

“왜 그러시죠? 혹시 무슨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이유는 묻지 마시오!!”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언어구사! 여백의 미를 아는군요. 하지만 저도 호락호락하진 않습니다.

 

 

“이유를 묻지도 않고 야간에 소장 직무 대리권자인 당직 계장 면담 요구를 보고한다는 것은 근무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참고로 교도관 직무 및 계호에 관한 여러 규정과 대법원의 관련 판시 사항을 살펴봐도 이 점은 명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뿔싸! 말을 뱉어놓고 보니, 너무 딱딱하고 차가웠습니다. 논리는 섰으나 온기를 상실한 기계적 모범 답안을 나열한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그의 검은 눈동자가 진한 초점을 맞추며 나의 인중에 박힙니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내뿜습니다.

 

“그렇다면 면담을 하지 않겠습니다.”

 

어라? 의외였습니다. 갑자기 사용하는 존댓말과 화끈한 후퇴!

그러나 메스껍기만한 눈웃음의 여운이 뭔가 다른 복선을 예고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니, 제가 면담을 시켜드리지 않으려고 한건 아니고, 계급의 위계구조상 하급자인 제가 상관에게 무언가 보고를 드리려면 최소한의 경위 파악은 기본일 수밖에 없음을 말씀 드린 겁니다. 오해는 마시고요.”

 

“면담을 하지 않겠다는데 수용자의 평온한 취침시간을 이런 식으로 방해해도 됩니까? 나는 당신에게 이유를 물어야 하는 사유를 궁금해 한 사실이 없습니다.”

 

멋지군. 사람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재주가 아주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역시 내공이 세다는 평이 빈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럴 땐 나도 심플하게!

 

“네 그럼 평온하게 취침하십시오.”

 

흠. 이럴 때는 기분이 정말 이상합니다. 잘 한 것도 같고 못한 것도 같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밀려드는 정보공개 청구! 내 이럴 줄 알았어!!

다음 날,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수용자의 무더기 정보공개 청구와 잇따른 계장 면담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협상처럼 주고받기를 할 우리가 아니지만 사동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두툼한 심리적 전리품을 획득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수용자들도 그에게 검투사의 카리스마를 느꼈는지 그를 하나같이 형님 운운하며 받드는(?) 듯 했습니다.

 

 

최근 교정행정의 최대 난제는 이른 바 ‘문제수용자의 효과적인 개별처우를 어떻게 도모할까’ 입니다. 특히 수용자의 인권의식이 강화되고, 권리구제 방법도 다양하게 보장된 요즘, 이 문제는 더욱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수용자들이 해달라면 해줘야 하는 요즘, 수용자들이 일부러 교도관을 괴롭히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많은 양의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정행정 역량을 분산시키는 효과적인 교정교화모델의 시도와 개발, 적용마저 방해하는 가장 핵심적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여러 대책과 아이디어가 속출하고는 있지만 일선의 체감지수는 전혀 개선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꾸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정말 어렵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수용자들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러 직원들의 경험담을 듣고 그 수용자 개인의 범죄사실 및 주요 수용생활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알아본 후였지요. 그런데 그 수용자는 많이 달라진 태도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징역을 풀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존 비법이었다는 고백 아닌 고백도 쉽게 내뱉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짓궂은 모습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요?

 

 

상담의 기본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만 들어줘도 그 사람이 갖는 고민의 정체를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동안 선의와 진심을 가지고 한결 정제된 태도와 표현으로 일관적으로 수용자를 대한다면, 그 어떤 수용자라도 설득하고 융화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 스스로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용자들 대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금 아련한 안개에 휩싸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수용자들 대하는 자세. 어렵지만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부딪히는 수 밖에!!

 

 

모든 일러스트 = 아이클릭아트

교도소사진 = 법무부

글 = 이창희

 

이 글은 [월간교정 Vol. 394]에 실린 이창희 교위의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