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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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려 먹는 단감보다 더 맛있는 침시(沈柿)의 추억

법무부 블로그 2010. 6. 14. 08:00

교도소에서 띄우는 ‘어머님전 상서’

남00 ∥ 전주교도소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하는데 옆 동료가 단감을 몇 개 갖다 줍니다. 단감을 보니 우린 감을 먹던 옛날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머니도 생각나고요.

 

요즘에는 사과, 배, 감 그리고 외국에서 들여온 과일까지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명절이나 제사 때가 아니면 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때 마을마다 집집마다 널려 있던 감나무, 언제부터인가 지혜가 풍부한 어른들은 떫고 독한 감을 우려내는 방법을 찾아냈지요.

 

제가 뒤안에 있던 싯푸런 생감을 한 소쿠리 따다드리면 어머니는 미리 방 아랫목에다 소금물을 넣은 항아리를 설치해놓고, 그 감을 받아 넣고 이불을 씌웠지요. 별 하나 없는 캄캄한 독 속에 들어가 그것도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그 감은 사실 죽을 맛이었겠지요. 하루 정도 지나면 고약한 냄새가 온 방에 진동했습니다. 저는 그 냄새도 개의치 않고 어서 빨리 감이 우려지기를 동생과 함께 영차, 영차 박수를 치며 응원했습니다. 드디어 개봉, 어머니가 꺼내주시던 침시(沈柿). 단감도 아니면서 달고, 단감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향이 있었습니다. 그걸 동네 아이들과 나눠 먹고 가을 운동회에도 가져갔던 기억이 납니다.

 

 

동료가 준 감은 한 입 깨물어 보니 때깔도 노랗고, 크고, 당도도 뛰어났지만 그 시절 어머니가 우려 주시던 그 감보다는 못한 것 같았습니다. 삭힌 감이 맛있었던 까닭은 직접 어머니가 우려 주시고, 자식들 먹이려고 애쓴 어머니의 희생정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제 인생이 삭힌 감보다는 고생도 덜하고 사랑 많이 받는 단감이 되었으면 좋으련만요.

별안간 정신 차려 보니 어머니 기대도 저버리고 떫고 못난 감이 되어 있습니다. 시커먼 독 속에 들어가 제 독소를 소금물에 우리느라 껍질이 벗겨지는 침시처럼, 제 성깔을 실에 꿰어 햇볕에 말리는 곶감처럼, 바로잡으려 갖은 애를 다 쓰고 있지만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던 어머니 말씀을 따르지 않은 제 못난 탓인데요.

 

언제 감이 우려지나 궁금증이 일어 독 뚜껑을 열어보려면 어머니는 말리셨죠. 중도에 열면 김이 팍 샌다. 무엇이든 익고 삭히는 데에는 저 만의 때가 있다고 하시면서요. 만사에 때가 있다는 어머니 말씀을 잊지 않고 항상 간직했다면 지금하고는 딴판의 삶을 살고 있었겠죠.

 

어머니! 떫고 독기가 철철 배어 있어도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으니 다시 한번 삭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일까요. 떫고 철모르는 감이 제 독소를 제 스스로 제거했듯이 저도 저 혼자 힘으로 남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은 마음, 제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욕심냈던 마음 등 제 독기를 눈물과 땀방울로 쏘옥 빼내겠습니다.

 

감이 빠알갛게 익어가는 10월 들판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수확을 하실 고향 마을 어르신들, 그 시절이 그립고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열렬히 응원해 주세요. 그리고 잘 우려냈는지 잘 삭혔는지 꼭 평가해 주세요. 살아계셔요.

 

 

 

이 글은 교정본부에서

재소자들의 글을 모아 만든 책 ‘새길(2009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에 대해 시인 신정민씨는

‘단감 몇 개를 보면서, 떫은 맛을 우려내는 어머니와 자신에게서 버려야 할 것을 찾아낸

좋은 마음이 보이는 글입니다’라고 작품평을 남기셨습니다.

 

침시처럼 마음의 독소를 모두 뽑아내고 싶다는

지은이의 마음이 간절히 다가오네요.

마지막 ‘살아계셔요’라는 다섯 글자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모든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